본문 바로가기
브랜드

에르메스(Hermès)의 역사 2탄(1984년 ~ )

 

에르메스(Hermès)

에르메스로고
에르메스(Hermès)

 

에르메스(Hermès)의 역사 1탄(설립 ~ 남성복 출시)

 

1984년,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로베르 뒤마의 아들인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는 우연히 배우 겸 가수인 제인 버킨(Jane Birkin)을 비행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버킨은 머리 위에 있는 짐칸에 가방을 놓다가 실수를 하게 되고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녀는 장 루이 뒤마에게 가죽으로 된 위켄드 백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다며 에르메스에서 켈리보다 좀 더 큰 가방을 만들 수 없는지 묻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최상위 명품 가방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버킨(Birkin) 백의 탄생 계기입니다.

 

1987년에는 창립 150주년을 맞아 파리의 퐁뇌프 다리에서 에르메스 150주년 기념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에르메스 150주년을 기념스카프 "Feux d'artifices"

 

캐서린 카롤리가 에르메스를 떠난 뒤 생산되지 않던 여성복은 1988년 프랑스 마리끌레르의 편집장이었던 클로드 브루에(Claude Brouet)가 여성복 크리에이터 디렉터로 합류하면서 다시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여성복 팀에는 후에 보테가 베네타의 디자이너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클로드 브루에는 1997년까지 에르메스의 여성복을 이끕니다.

 

1988년에는 니노 세루티(Nino Cerruti)에 몸담았던 베로니크 니카니안(Véronique Nichanian)이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남성복을 이끕니다.

에르메스가죽공방
팡탱의 에르메스 가죽 공방

 

24번지 포부르 생토노레에 있던 에르메스의 가죽 공방은 파리 외곽의 팡탱(Pantin) 지역으로 1992년에 자리를 옮깁니다. 이 가죽공방은 Cité des métiers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2013년에 다섯 개의 테마 정원으로 여러 개의 건물이 연결된 형태로 확장되었습니다.

 

 

클루에 브루에가 에르메스를 떠나고 1997년,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에르메스에 합류합니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2003년까지 에르메스의 여성복을 이끕니다.

 

2000년에는 미국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에 메종 에르메스(Maison Hermès)를 오픈하고 2001년에는 일본 도쿄 긴자(Ginza)에, 그리고 한국의 서울 도산 공원에 2006년에 매장을 오픈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2002년에는 미국에서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를, 그로부터 3년 후에는 프랑스에 이커머스 웹사이트를 오픈합니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회사를 떠나고 2003년 장 폴 고티에(Jean-Paul Gaultier)가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에르메스에 합류합니다.

장폴 고티에 에르메스 데뷔 컬렉션(2004/2005 FW)

2005년에는 장 루이 뒤마의 아들인 피에르 알렉시스 뒤마(Pierre-Alexis Dumas)가 예술 감독직을 맡으면서 에르메스는 6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갑니다.

장 폴 고티에가 에르메스를 떠나고 라코스테 (Lacoste)의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가 2010년 에르메스에 합류합니다. 장 루이 뒤마는 오랜 투병 끝에 2010년 사망합니다. 크리스토프 르메르는 2014년까지 에르메스의 여성복을 이끕니다.

 

2012년, 장 루이 뒤마의 조카인 악셀 뒤마(Axel Dumas)가 에르메스의 CEO로 취임합니다.

2014년에는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에르메스를 떠나고 마르지엘라와 셀린느에서 근무한 나데주 반히-시불스키(Nadège Vanhee-Cybulski)가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그녀는 2024년 현재까지 에르메스에서 여성복을 이끌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5년간 디자인과 연구한 결과물인 첫 번째 화장품 컬렉션 루즈 에르메스(Rouge Hermès)가 출시되면서 화장품 사업이 시작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