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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셀린느(CELINE)의 역사 1탄(설립 ~ 2008년 피비 파일로 이전)

 

아동용 신발 매장에서 시작된 셀린느는 오랜 시간 여성들이 원하는 세련미와 미니멀리즘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오랜 시간 명품브랜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으며 2008년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부터 더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셀린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셀린느(CELINE)

파리 말테가 52번지(52 Rue Malte)에 셀린느(Céline)와 그의 남편 리처드 비피아나(Richard Vipiana)는 1945년에 맞춤 제작 아동 신발 매장을 오픈합니다. 당시 유명한 만화가였던 레이먼드 페이넷(Raymond Peynet)이 코끼리 모양의 로고를 디자인했습니다.

최초의셀린느로고와-당시의셀린느광고
최초의 셀린느 로고(코끼리) / 당시의 셀린느 광고

 

아동용 슈즈는 가볍고 튼튼했고, 고급스럽고 편안하여 아이가 있는 엄마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고 셀린느의 매장은 오픈 후 3년 뒤인 1948년, 3개로 늘어납니다.

 

1959년에는 가죽소재를 사용한 낮은 굽의 여성용 신발인 잉카 로퍼(Inca loafer)가 출시되는데 이 신발은 출시되자마자 여성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게 되고 셀린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가죽 공장을 마련, 여성 신발 사업에 착수합니다.

 

1960년에는 셀린느의 첫 여성 기성복을 선보입니다. 셀린느의 첫 여성복은 스타일뿐만 아니라 기능에도 중점을 둔 스포츠웨어 느낌이 다소 강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곧 셀린느는 다양한 가죽 액세서리를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1966년에는 가방과 장갑, 벨트 등의 액세서리를 피렌체 가죽 공장에서 제작하여 출시합니다. 

아메리칸설키로고
1966년, 셀린느의 아메리칸 설키 로고

 

당시의 승마는 고급스러움과 클래식을 상징하는 고급 스포츠였는데 리처드 비피아나 역시 승마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이때 셀린느의 '아메리칸 설키(American Sulky)' 로고가 탄생합니다.

 

1967년에는 셀린느의 첫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게 됩니다. 셀린느의 옷은 세련된 느낌과 캐주얼한 감성의 편안함을 갖추고 있었으며 유럽 시장과 아시아 시장까지 확장되며 저 세계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1970년대-셀린느광고캠페인
1970년대 셀린느 광고캠페인

 

1973년에는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은 C 모양의 로고로 변경되는데 이 로고는 현재까지도 셀린느의 시그니처이며 캔버스나 액세서리 등에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선문에서영감을받은셀린느C로고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은 셀린느의 C로고

 

1987년, 셀린느 피비아나는 은퇴를 생각하며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자 했으나 그들의 아들은 불행히도 전혀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때 LVMH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셀린느의 주식 70%가량을 매입합니다.

결국 셀린느는 1996년 LVMH의 일원이 되었고 셀린느 비피아나는 크리에이터 디렉터로 남게 되자만 이듬해인 1997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1997년,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미국의 디자이너인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가 임명됩니다. 마이클 코어스는 파리지앵의 감성에 미국의 실용성을 결합하여 셀린느를 통하여 현대적인 여성복의 매력을 대담하게 연출합니다.

셀린느부기백
마이클 코어스의 셀린느 부기백

 

마이클 코어스는 셀린느에서 부기(Boogie) 백을 비롯, 여러 액세서리 아이템들을 히트시키지만 셀린느에 합류한 지 6년 후인 2003년,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셀린느를 떠납니다.

셀린느의2000년-광고캠페인
셀린느 2000년 광고 캠페인

 

마이클 코어스가 셀린느를 떠난 후 2004년에는 버버리의 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Roberto Menichetti)가 합류하였지만 그는 1년 후 셀린느를 떠났고

 

로베르토 메니체티의 후임으로 2006년에는 이바나 오마직(Ivana Omazic)이 합류합니다. 이바나 오마직은 질샌더(Jil Sander)와 프라다(Prada), 미우미우(miu miu) 등에서 활약을 했던 디자이너였으나 기대와 달리 셀린느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결국 2008년 이바나 오마직 역시 셀린느를 떠납니다.

 

셀린느(CELINE)의 역사 2탄(2008년 피비 파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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